어린이들이 읽는 그림책과 허무주의라는 세계관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림책도 우리 문화의 한 영역이자 예술가의 창작품이므로 이 사회를 풍미(風靡)하는 시대사조와 작가의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국제적인 도서상을 수상한 작품들일수록 시대정신을 투영하는 경우가 많다. 존 클라센(John Klassen)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모자 삼부작』은 ‘2011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된 『내 모자 어디 갔을까?』 (I want my hat back) (2011년), 2013년 칼데콧 메달상을 받은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This is not my hat) (2012), 그리고 『모자를 보았어』 (We found a hat) (2016)을 일컫는다. 그림책의 세계관 연구에서 이 세 작품을 같이 읽는 것은 작가의 세계관에 접근하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1] 복수의 텍스트에서 어떤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작가의 사소한 관심사가 아니라 그의 주된 관심사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more
지난 여름 교육계에 ‘교권 침해’의 문제로 우리 모두는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여 더욱 지친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여전히 선생님들에게, 학부모에게, 학생에게 아직 풀리지 않는 숙제에 마음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사실 교육의 현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터질 문제라는 사실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지나치게 왜곡 돼버린 아동의 인권, 학생의 권리와 관련된 조례들은 비단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의 교권만을 침해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권리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한 지인의 자녀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 권리를 내세워 부모의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훈육하자 아이는 부모를 학교에 신고했고, 부모는 학교에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측은 이런 일이 한 번 더 있으면 바로 아동학대와 관련 사건으로 교육청으로 신고되고, 그 즉시 부모와 아이는 격리조치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 일을 겪은 어머님은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부모도 아이들을 어찌하지 못하면 도대체 아이들은 누가 기르냐며 한참 하소연을 했습니다......more
벌써 작년의 일이다. 아이가 책을 읽다가 내게 물었다. “엄마, 멸종이 뭐야?” 노트북 스크린만 주시하고 있던 나는 잠깐 눈을 들어 아이가 들고 있는 책을 바라보았다. 그 책에는 온갖 종류의 동물의 멸종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아이에게 아직 멸종의 개념을 가르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던 나는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멸종’에 대한 설명은 은근슬쩍 건너 뛰고 괜히 아이를 꾸짖었다. “엄마가 연구하는 책은 함부로 보면 안 된다고 했지?” 책을 아이 손에서 빼앗아 치우는데 아이가 집요하게 뜻을 물었다. “엄마, 멸종이 뭔데? 죽는 거야?” 멸종의 사전적인 정의는 ‘생물의 한 종류가 아주 없어짐.’이다. 아이는 일찍 글자를 깨쳐 책을 즐겨 읽었지만 글자를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어떤 내용이든 소화를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아직 여린 나이였다. 그래서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책을 가려서 주곤 했는데 종종 나의 불찰로 아이가 엉뚱한 책을 혼자 읽고 있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결국 멸종의 뜻을 들은 아이는 “도도새를 볼 수 없다니! 도도새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니!” 하며 대성통곡을 하였다...more
제가 그림책의 소재로서 ‘귀신 이야기’를 연구하기 시작한지 꼬박 2년이 되었습니다. 2021년 아직 ‘코로나 19’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흔들고 있을 무렵 어째서인지 세상은 ‘좀비’라는 캐릭터에 열광했습니다. 2016년 ‘부산행’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여 대 흥행을 하였고, 연이어 2019년 한 OTT 회사에서 만든 ‘킹덤’이라는 드라마가 소위 대박을 터트렸는데, 이는 조선 땅에 나타난 ‘좀비’를 소재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2020년 시즌 2를, 2021년 시즌 3를 연달아 만들어 내면서 ‘좀비’라는 캐릭터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하나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Tiktok’이라는 동영상 플랫폼에 한 때 초중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좀비사진 찍기가 유행한 적이 있지요. 이미 아이들은 ‘좀비 놀이’라며 시체처럼 아무 곳에나 널브러져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다른 친구들을 잡아 좀비로 오염시키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시체 흉내를 내거나 괴물 흉내를 내는 것을 짧은 영상으로 찍어 동영상 플랫폼에 공유하고 서로 즐겼습니다.....more
점점 가을이 짧아집니다. 가을 하늘의 높고 푸르름을 보고 놀라신 적 있나요? 몇일 전 거실의 커다란 창문 너머로 쏟아질 것 같은 가을 하늘을 봤습니다. 딸과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열어놓은 창문으로 눈길이 돌려졌는데 커다란 그림을 걸어 놓은 듯 가을 하늘이 걸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림 같은 진짜 하늘이었지요. 밖에 있으면 어디서나 보이는 것이 하늘이라 멀고 큰 하늘만 생각했지 가깝고 커다란 하늘은 처음 느껴본 듯합니다. 둘이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빠져들 것처럼 커다란 하늘은 우리의 일상에 항상 있기에 존재를 잊고 살아가지만 가끔 얼굴을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을 만드신 창조주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가을이 되길 바랍니다.....more
『너도 맞고, 나도 맞아』라는 제목이 보여 주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관용'의 태도를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 듯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생각만 주장하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적 관용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면 ‘도덕적 상대주의'로 흐를 수 있다. 2020년에 출간된 그림책 <너도 맞고, 나도 맞아!>가 배려와 관용의 미덕을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였지만 추천할 만한 책인지 고민이 되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그림책이 어느 면에서 그런 고민과 염려를 주었는지, 그리고 아이들과 어떻게 함께 읽는 것이 좋을지 조금은 정리가 되어 펜을 들었다....more